
186,000원 — 결핍을 소비로 메우려 할 때
8월 23, 2026이틀 전 쓴 글이
틀렸습니다
마흔에 『마흔에 읽는 파우스트』를 두 번 읽었습니다. 쉰이 되도록 모르겠습니다.
이틀 전 여기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포갈집에서 186,000원이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결핍을 소비로 메우려 했다고, 저를 진단했습니다.
틀렸습니다. 그날 계산한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보도블록에 불을 질렀습니다
어제 아들이 열여덟이 됐습니다.
아내는 보도블록에 스프레이로 18을 쓰고 불을 붙였습니다. 요즘 유행이라고 했습니다. 3초 만에 꺼졌습니다. 아내는 “왜 안 되지” 하면서 스프레이를 더 뿌렸고, 저는 케이크를 뒤로 옮겼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철딱서니 없다고.

그러다 알았습니다. 고깃집도 아내였다는 걸.
숫자는 맞았고, 사람을 틀렸습니다
이틀 전 저는 아주 정확한 글을 썼습니다. 10,900원짜리 집에서 186,000원을 썼다. 옆 테이블은 5만원을 썼다. 우리는 세 배를 썼다. 결핍을 채우려는 소비에는 적정선이 있어야 한다.
숫자는 하나도 안 틀렸습니다. 사람을 잘못 짚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잘못 짚으니 결론이 통째로 틀어졌습니다.
아내는 결핍을 메우고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순간이 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흔에 『마흔에 읽는 파우스트』를 읽었습니다. 한 번으로는 모르겠어서 두 번 읽었습니다. 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졌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악마와 내기를 합니다. 어떤 순간을 만나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게 되면 영혼을 내주겠다고요.
읽을 때는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하나에 영혼을 왜 거나.
이제 조금 알겠습니다. 어려운 건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순간이 와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계산서를 봤고, 아내는 아들 얼굴을 봤습니다
저는 값을 적는 사람입니다. 백반 9,000원, 곰탕 15,000원, 버스 요금 1,500원. 다 받아적습니다. 그게 세상을 정확히 보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불이 붙은 3초 동안 아들이 웃었습니다. 열여덟 살짜리가 아빠 앞에서 그렇게 웃는 걸 오랜만에 봤습니다. 아내는 그 3초를 만들려고 3천원짜리 스프레이를 샀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사람은 자꾸 계산을 합니다. 계산은 정확합니다. 다만 정확한 게 전부는 아니더군요.
아내는 현실에서 도망친 게 아니었습니다. 3초 동안 이긴 겁니다.
위로처럼 읽히던 문장이, 숙제처럼 읽힙니다
파우스트 마지막에, 끊임없이 애쓰며 나아가는 사람은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십 년 전엔 위로처럼 읽혔습니다. 지금은 숙제처럼 읽힙니다.
저는 더 벌어야 합니다. 그건 변명할 게 없습니다. 다만 버는 동안에도 3초는 알아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이틀 전 글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틀린 채로 두겠습니다. 제가 저런 눈으로 세상을 봤다는 기록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