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장기식당 — 곰탕인데 육향이 안 납니다
8월 15, 2026
편의점 하이볼 4캔 12,000원, 술 모르는 아빠가 담은 결과
8월 17, 2026쓰레빠를 신고 부산에 남았습니다
“여름방학 선물이야.”
아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저는 이미 차에 타 있었습니다. 쓰레빠를 신고서요. 목적지는 부산 아시아드, 싸이 흠뻑쇼였습니다.

오후 3시. 도착은 했는데 차를 댈 곳이 없었습니다. 주차장 입구마다 막혀 있었고, 근처를 몇 바퀴 돌아도 자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표는 세 장만 끊었습니다. 아내와 아이 둘. 저는 빠졌습니다.
가족을 내려주고 나니 쓰레빠를 신은 아빠와 자동차 한 대가 부산 한복판에 남았습니다. 공연은 밤에 끝납니다. 일곱 시간이 비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더 억울했던 것
그날 사직에서 열릴 예정이던 야구가 취소됐다는 걸 저는 한참 뒤에 알았습니다. 제가 일정을 다 마치고 아시아드로 돌아왔을 때는 주차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 시간만 다르게 움직였으면 저도 흠뻑 젖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빠는 그런 걸 꼭 나중에 압니다.
1. 구포시장 — 죽도시장 사나이가 남의 시장에 가면
부산 3대 시장이라는 말을 듣고 갔습니다. 포항 죽도시장을 제 앞마당처럼 다니는 사람으로서, 남의 시장은 늘 궁금합니다.

들어가 보고 먼저 부러웠던 건 아케이드였습니다. 시장 전체가 지붕 아래 들어가 있어서, 그렇게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접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횟집이 정말 많습니다. 통로 양쪽으로 수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계속 죽도시장 생각을 했습니다. 직업병입니다.
구포 하면 구포국수
구포에 왔으니 국수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 안쪽 이원화 구포국시에 들어갔습니다.


메뉴판이 재미있었습니다. ‘따신국시’와 ‘차븐국시’가 나란히 있습니다. 따뜻한 것과 찬 것. 부산 말이 메뉴판에 그대로 올라와 있는 게 좋았습니다. 각각 6,000원입니다.
가게 앞에는 마른국수를 쌓아두고 팝니다. 1.4kg 7,000원, 14kg 70,000원. 시장에서 국수를 상자째 사 가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봤습니다.


국시 한 그릇과 꿀떡. 그게 제 점심이자 저녁 사이의 무엇이었습니다.
2. 모모스커피 — 30분 차이로 커피를 못 마셨습니다
부산 3대 커피라는 말을 듣고 모모스로 갔습니다. 도착은 6시쯤이었습니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문이 안 됐습니다. 영업은 18:00까지인데, 라스트오더가 17:30입니다. 30분 차이로 저는 커피를 못 마셨습니다.
그런데 못 마시고도 알겠더군요. 왜 여기를 그렇게 부르는지.


선반 위에 ‘THE WORLD’S 100 BEST COFFEE SHOPS 2026’ 패널이 조용히 걸려 있었습니다. 크게 자랑하지 않고 원두 상자들 위에 그냥 놓여 있는 게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건 규모였습니다. 1층에서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2층이 또 있었습니다.


커피를 못 마셨는데도 30분을 그냥 걸어다녔습니다. 다음에 부산에 가면 저는 다른 데를 안 가고 여기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갈 겁니다. 07:30에 엽니다.
3. 논피니토 —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갤러리였습니다
커피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산대 쪽 논피니토(nonfinito)로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카페가 아니라 전시장에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홀 한가운데 큐브가 서 있고, 그 면마다 사람 얼굴과 돌 사진이 겹쳐진 이미지가 붙어 있습니다. 얼굴의 일부가 돌로 바뀌어 있습니다. 처음엔 좀 서늘한데, 보다 보면 계속 보게 됩니다.


바닥에는 돌이 그냥 놓여 있고, 조명이 그 돌 하나하나를 비춥니다. 카페 인테리어라고 하기엔 너무 정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논피니토(non-finito)’는 이탈리아어로 ‘미완성’이라는 뜻입니다. 미켈란젤로가 돌에서 형태를 다 꺼내지 않고 남겨둔 조각들을 부르는 미술 용어이기도 합니다. 얼굴과 돌을 겹쳐 놓은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블랙라떼

주문한 건 블랙라떼, 흑임자 라떼였습니다. 고소한데 무겁지 않고, 단맛이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커피를 못 마신 채로 두 시간을 돌아다닌 사람의 갈증을 채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디저트도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벽에 파티시에 네 사람의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Hazel, Rona, Zia, Ian. 만드는 사람 얼굴을 이렇게 앞에 내거는 카페는 드뭅니다.

그런데 8월 23일까지입니다

계산을 하려는데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장 내부 사정으로 인해 2026년 8월 23일(일요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오늘 기준으로 일주일이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들어갔다가 마지막 주에 걸린 셈입니다.
에피소드 — 그날 가장 절실했던 300ml
중간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했습니다.
쓰레빠 신은 낯선 아저씨가 남의 동네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정중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뭐라도 하나 샀습니다.

300ml, 0kcal. 그날 제가 가장 절실하게 산 물건이었습니다.
다시 아시아드로

세 군데를 다 돌고 아시아드로 돌아오니 주차 자리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명당이었습니다.
시동을 끄고 한숨 잤습니다. 창밖으로 조명이 번졌고, 저 안 어딘가에서 제 가족 셋이 물을 맞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온 셋은 예상대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표는 세 장이었지만, 그날 하루를 제일 길게 쓴 사람은 저였습니다.
아빠가 배운 것 세 가지
- 아시아드 공연 날은 오후 3시도 늦습니다. 그날은 인근 경기 일정까지 겹쳐 있었습니다. 차를 가져갈 거면 훨씬 일찍, 아니면 아예 대중교통이 마음 편합니다.
- ‘몇 시까지 영업’과 ‘몇 시까지 주문’은 다릅니다. 모모스는 18:00까지 열지만 주문은 17:30까지입니다. 저는 그 30분 때문에 커피를 못 마셨습니다.
- 가고 싶은 가게에 ‘다음에’는 없습니다. 논피니토는 8월 23일에 문을 닫습니다. 제가 하루만 늦게 갔어도 저는 이 글을 못 썼을 겁니다.
방문 정보
이원화 구포국시 (구포시장)
| 상호 | 간판 표기는 ‘이원와 구포국시’, 지도·검색 표기는 ‘이원화구포국시’입니다. 검색하실 땐 ‘이원화’로 찾으셔야 나옵니다. |
|---|---|
| 주소 | 부산 북구 구포시장1길 6 |
| 영업 | 09:00 – 18:30 (라스트오더 18:00) |
| 휴무 | 매주 월요일 |
| 전화 | 051-333-9892 |
| 가격 | 따신국시·차븐국시 6,000 / 비빔국시 7,000 / 회비빔국시 8,000 / 콩국시 7,000 / 김밥 4,000 (곱빼기 +1,000) |
| 포장 | 마른국수 1.4kg 7,000 / 14kg 70,000 (가게 앞 판매대) |
모모스커피 부산본점
| 주소 | 부산 금정구 오시게로 20 |
|---|---|
| 영업 | 07:30 – 18:00 |
| 라스트오더 | 17:30 — 이것 때문에 저는 못 마셨습니다 |
| 전화 | 051-512-7036 |
| 메모 | 1층 원두 판매·바, 2층 목조 홀. 매장에 ‘THE WORLD’S 100 BEST COFFEE SHOPS 2026’ 패널이 걸려 있습니다. |
논피니토 (nonfinito) · 부산대
| 영업 종료 | 2026년 8월 23일(일)까지 — 매장 안내문 기준 |
|---|---|
| 추천 | 블랙라떼 (흑임자 라떼) |
| 메모 | 갤러리형 카페. 1·2층 전체가 전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
| 안내 | 영업 종료가 임박했으니 방문 전 영업 여부를 꼭 확인하세요. |
포항으로 돌아와서 쓴 기록들
쓰레빠 원정기 — 계획 없이 나갔다가 하루를 통째로 쓰게 된 날들의 기록입니다. 이번이 첫 번째입니다.


